강력한 사회운동에는 다수의 마라톤 주자가 필요합니다

(하기의 성명서는 제가 10월 25일 민족학교의 실무진 및 이사진에게 보냈던 내용입니다. 제가 본 성명을 작성한 10월 25일 후 상황이 크게 변화했으며, 이에 대해서는 11월 7일차 공식 성명을 참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족학교 김용호 / 10-25-2019

English: A Powerful Movement Requires Movement Marathon Runners

저는 민족학교에서 2005년에 자원봉사자로 시작하여 선거 자원봉사, 메디케어 파트 D 가입, 연장자 모임 조직, 웹사이트, 서류미비 학생 대학 상담, 서류미비 학생 조직, 이민개혁 및 드림법안 캠페인, 시민참여 캠페인, 성소수자 모임 조직, 데이터베이스, 언론 홍보, 행정 등을 맡아왔습니다.

저는 이번 재정적자 논란에 대해 양측의 주장에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감안했을 때 윤대중씨가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이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려 이제 입장을 표명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것과 같이 저는 민족학교에서 매우 긍정적인 초기 경험을 했으며, 이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후술할 이유 때문에 대중씨가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민족학교로 오기 전 미네소타 주 대학시절, 라티노 노동자권익 단체에서 2년 남짓 무급 인턴 겸 견습 활동가 같은 역할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기사 작성, 웹사이트, 이민자권익 시 조례안 연합체 회의, 통역, 노동자 상담 등의 활동을 맡았는데, 많은 부분 단체의 관료주의적인 장애에 부딛혀 작업 결과물들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대학 졸업에 즈음하여 그 단체의 부장이 알려주었습니다. “네가 우리 단체로 오기 직전에 대규모의 조직 분열이 있었고, 사람들이 떠나갔다. 그리고 그 후에 라티노도 아닌 네가 스페인어를 한다며 굳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접근하니 우리는 네가 반대측에서 보낸 스파이가 아닌지 의심스러워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 진행한 업무 내용 중 일부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는 물었습니다: “너 일 잘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계속 활동하지 않을래?”

상황에 따라서 사람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의심하는 동시에 일을 맡겨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의심 본능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급한 일은 해결하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취하는 비윤리적인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5년에 LA로 왔습니다. 그리고 졸업하면서 모아온 돈이 다 떨어져가는 와중에 민족학교와 만나 활동을 시작하고, 두가지 긍정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는 2006년 3월 25일 다운타운에서 백만명이 모이는 집회에 참여한 것입니다. 민족학교는 그 시위가 반이민법을 막아내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시위를 앞두고 2주 남짓한 기간 동안 정말 급하게 자정까지 수천명의 사람들을 연락하고, 교육하고, 기성 1세 한인 단체들이(한인회, 교회협, 의류협회 등) 이번 시위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면서 그동안 “멕시코 사람들이나 신경쓰는 문제”라고 여겨지던 이민자 권익 이슈가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범 한인 사회의 이슈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한인 1,000명이 시위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당시의 목표이고 달성했다고 생각하는데, 백만명이 모이는 그 자리에서 풍물패가 서로 찾는 것도 고역이어서 결국 얼마나 모였는지는 잘 모릅니다.

두번째 경험은 제가 웹사이트를 맡은 후 사이트의 내부 구성 요소가 너무 후져서 도저히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외부는 그대로 두고 내부만 최신 표준 도구(워드프레스)로 갈아엎자는 제안을 했을 때였습니다. 윤대중 사무국장은 이를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만일 제가 사무국장이라면 그렇게 위험요소가 높은 프로젝트는 승낙하지 않습니다. 웹사이트는 많은 외부 사람들에게 곧 단체의 얼굴인데, 어떻게 5개월차 인턴에게 그런 걸 맡깁니까? 진행하다가 고장나버리면 어떡하죠? 사실 왜 승인이 났는지는 잘 모릅니다. 대중씨는 웹사이트를 맡은 당사자가 저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선 활동가의 판단을 존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외주를 맡겼을 경우 수천달러가 들었을지도 모르는 웹사이트 내부 공사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거의 공짜로 마무리하고 계속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민족학교에 남아 활동한 이유는 상기 두가지 경험인 것 같습니다. 첫째로 민족학교가 한인 사회뿐만 아니라 다문화 조직 활동의 대표지역인 LA 전체에서 정의를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조직으로 파악했습니다. 정치인이나 노동조합에서 스카웃 제의가 올때도 있었지만, 저는 민족학교가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로 이런 역량을 가진 단체답지 않게 실험적인 시도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활동가의 판단을 믿어주는 진취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또 한번은 예기치 않게 수중의 돈이 모두 바닥나 대중씨에게 상당액의 사비를 빌린적도 있습니다. ($1,000 정도를 한달 동안 빌렸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모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재정의 현재 상태

민족학교의 재정 상태에 관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3자 전문가의 분석을 다음 주 10월 29일 화요일에 같이 들었으면 합니다. 저도 이 사건 관계자 및 재정을 맡은 부장으로서 이들 재정 전문가들과 면담을 하고 여러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을 했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저는 “나는 재정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잘도 재정과 행정을 운영했구나” 라는 점과, 저를 포함해 민족학교의 재정에 관련된 모든 관계자들이 민족학교처럼 이제 중급 규모에 도달한, 그리고 권익 활동과 서비스를 동시에 하는 비영리단체라는 특수성을 포함한 단체에서 재정을 운영 및 분석 할 때 요구되는 재정적 전문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일부 정보에만 의존하는 위태한 운영을 해왔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름의 재정 논의

올해 여름 경 대중씨는 재정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보고 분석을 한 결과 큰 재정 적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부장들에게 이를 알려왔습니다. 저희는 그때부터 두달 동안 수많은 시간을 할애해 대중씨와 심인보 이사와 재정에 관한 토론을 했습니다.

당시 대중씨와 인보씨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봅니다:

  • 현재 재정적으로 대규모의 적자가 누적되어 있다.
  • 늦기전에 이를 인정하고 하루 빨리 과감하게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 사람을 늦게 해고 할 수록 더 큰 적자가 누적되어, 더 큰 규모의 해고가 필요하게 된다.
  • 지도부는 빨리 인건비를 줄이는 계획안을 내놓아라.
  • 사람을 대책없이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단체에 가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고하여 이들이 다른 단체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자.
  • 합의서(MOU) 체결 없이 재단 관계자가 구두나 이메일로 그랜트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은 신뢰 할 수 없다. 그렇게 믿고 있다간 큰 그랜트 하나만 잘못되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적자가 날수도 있다. 이들 그랜트는 없는 것으로 치고, 확실하게 MOU가 서명된 그랜트만 수입으로 계산해야 한다.
  • 그랜트는 무조건 그랜트 기간에 동일 액수로 나누어 아껴써야 미래에도 예산 부족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은 재정적으로 무책임하다.
  • 커뮤니티 모금 수준을 늘린다고 하는데, 실무진들은 이미 더 이상의 모금 활동을 하는 것이 무리인 상태에서 이미 상반기의 모금 수준은 미미하다. 하반기에 이를 늘려 만회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빨리 결단을 하고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저는 이 때 인보씨가 박력있게 왼손으로 주먹을 만들어 오른손의 손바닥을 짝짝 내려치며 “빨리 과감하게 Cut! Cut! Cut!(이때 박자에 맞춰 손바닥 세번 내려침)을 해야 한다니까요!”라고 강조하던게 인상깊게 기억납니다.

이에 대응하여 저희 지도부 3명은 일부 분석에 동의하며,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 행정상의 실수로 인해 재정 보고 체계에 혼란이 일어난 점을 인정한다.
  • 적자의 일부는 원래 그랜트 수입 비율이 높은 비영리단체가 운영될 때 가을까지 자연적으로 쌓이는 액수이며, 이는 연말에 나머지 그랜트가 들어옴에 따라 해소된다. 다만 예상 외로 적자가 더 많이 쌓였기 때문에, 추가적인 그랜트 확보와 커뮤니티 모금액을 더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겠다.
  • 어차피 내년에 활동 규모가 늘어나면서 경험있는 활동가가 필요해지기 때문에, 대량 해고는 단기적인 문제만 바라본 악수이다. 그리고 실무진의 모금 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다만 추가 고용은 보류하자.
  • 실무진들에게 추가적인 모금 활동을 고려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대량해고 안을 결정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실무진들의 역량을 믿어볼 필요가 있다.
  • 인건비가 아닌 활동비(Programs), 운영비(Operations)를 최대한 줄인 예산안을 내놓겠다.
  • 지금처럼 적자가 있는 상태에서는 예외적으로 일부 그랜트는 그랜트의 목표를 조기 달성하면 내년으로 남기지 말고 전액을 사용해서 올해의 적자 해소에 배정하자.
  • 그랜트가 일부 구멍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타협책으로 MOU 를 확보한 그랜트(Confirmed)는 총액의 100%를 예상 수입으로 계산하고, MOU 없이 관계자의 약속이 있거나 그랜트 여부가 확정적인 경우는(Pending) 총액의 80%, 확정적이지 않은 그랜트는(Will Apply) 총액의 50%만 수입으로 계산하자.

그러나 두 이사는 이 안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8월 24일 이사회의에서 빨리 큰 결단을 하고 인건비를 줄이지 않으면 민족학교는 돌이킬 수 없는 적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사들을 부추켰습니다. 지도부가 제시한, 활동비와 운영비를 줄인 예산안 계획서는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지도부가 제시한 그랜트 수입과 커뮤니티 모금 계획을 포함하는 예산안을 성공적으로 이행하면 적자가 해소된다는 사실도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28만 달러의 적자와, 그 적자폭이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공포심만 심어주었습니다. 제가 볼 때 이 회의는 선동의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이사진은 지도부에게 5만 달러, 10만 달러 그리고 15만 달러의 삭감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저희는 이맘 들어 두달간 두 이사와 답이 정해진 회의를 반복하며 기진맥진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자포자기하고 대량해고안을 작성해 제출했습니다. 당시 저희는 이메일로 해고안을 이사진에게 제출하면서 아래와 같이 해고안을 소개했습니다:

민족학교 이사진이 8월 24일 회의에서 요구한 바에 따라 지도부는 다음과 같이 재정적자를 막기 위한 세가지 대량해고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9만 달러 규모 및 15만 달러 규모의 대량해고는 (인력 부족으로) 민족학교의 2019년 활동 목표에 미달하게 되어, 이미 확보된 수입원까지 취소하게 되는 결과까지 다다를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시나리오 A (6만 달러)를 추천합니다. (번역)

Based on the KRC Board’s request from the August 24th meeting, KRC’s Executive Team has explored the following three layoff scenarios to avert a financial deficit. We believe that layoff scenarios for $90,000 and $150,000 represent major setbacks for KRC’s goals and funding commitments for the year. We therefore strongly recommend Scenario A. (영문 원본)

이사진은 즉시 이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하며 다음과 같은 취지의 응답을 했습니다: (이사진이 한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 “적자 규모를 볼 때 9만 달러 시나리오가 적절해보인다. 사람들이 많이 해고될텐데, 참 어려운 결정이다”
  • “빨리 6만 달러 대량해고를 추진하고, 적자 상황을 밝혀 분위기를 조성하고, 경우에 따라 9만 달러 또는 15만 달러 시나리오를 추진 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
  • “해고 대상자들이 공평한 기준으로 선정되었는가? 해고 사유를 자세히 알고 싶다. 그리고 해고 대상자들이 다른 단체로 이직하도록 하고 싶은데, 이직 관련 정보를 받고 싶다. (어느 단체에서 어느 직책의 활동가를 모집하고 있는지)”

이후 대량해고가 논의중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실무진들이 크게 분노하자 이사진들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습니다.

모두 아다시피 9월 10일의 이사진-실무진-지도부 합동 회의에서 이사들이 이런 취지의 변명을 했죠?

  • “우리는 대량해고는 할 생각도 없었는데, 지도부가 다른 삭감안은 제시하지 않고 대량해고안 만 제시했기 때문에 그 선택지 중에서 고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다른 단체로 이직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해고가 아니다. 그건 운동 내에서 수평이동하는 것이다.”
  • “우리는 인건비를 줄이라고 했고, 그건 해고가 될수도 있지만 실무진 전원의 급여 삭감일수도 있는 것이다. 이사진은 해고안을 작성하라고 한 적이 없다. 이사진은 “예산 삭감”을 요구했지만 지도부가 “대량 해고”라고 잘못 이해한 것 같다”

이사진의 변명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이사진의 요구에 따라 지도부가 제출한 대량 해고안에 대한 이사진의 대응을 보면 명확해집니다.

  1. 어느 이사진도 저희의 대량해고안에 대해 “우리는 대량해고를 요구한 적이 없는데, 왜 이메일에 ‘이사진의 요구에 따라 대량해고 시나리오를 제시한다’라고 썼는가?”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2. 어느 이사진도 “왜 전원 급여 삭감안은 안 내놓는가?”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3. 한편 요구되었던 대량해고 내용을 저희가 제시하자, 이사진은 그에 맞춰 후속조치를 발빠르게 진행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발뺌하는게 민족학교의 정신입니까? 저는 이사진의 대응에 실망했습니다.

한편 인보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은 과감한 인건비 삭감을 주장했다고 꿋꿋하게 유지하시고 계신 것 같은데, 그 우직함은 인정해드립니다.

그래서 저희는 8월에 대량해고 계획안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상처만 안겨주고 비현실적인 요구를 하는 조직에는 머무를 수 없다. 다 같이 민족학교를 떠나서, 더 건강한 환경에서 사회 정의 활동을 펼치자. 다만, 적자를 해결하지 않은채로 8월에 떠나면 무책임하다고 욕만 먹고, 늦어진 그랜트가 다 들어온 후인 12월에 “부장들이 재정을 망치고 도망갔지만 우리가 힘을 모아 살려냈네요” 같은 소리도 듣기 싫어서 해결을 해둔 후 재정적으로 풍족해지는 12월에 떠나는 것이 뒷말이 적을 것이다”라고 합의를 했습니다. 저는 사퇴 또는 해고 된 이후 임시로 찾아볼 직업에 대해 생각해보며 개인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힘드니까 앞으로는 풀타임 말고 좀 쉬면서 널럴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윤대중 사퇴 요구

9월 초에 일부 실무진들이 저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들은 대중씨의 사퇴를 요구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물론 대중씨가 몇가지 경영 스타일의 문제가 있고, 고집이 더럽게 쎄고, 사람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기는 하지만, 그게 사람을 바로 내쫓을 정도의 문제인가요? 대중씨가 민족학교를 이끌어온게 몇년인데? 그리고 어디까지나 좋은 의도를 가지고 활동을 밀어붙인게 아닌가? 오해가 쌓인게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위기감도 느꼈습니다. 어떻게 수년간 쌓아올린 커뮤니티 조직 부서인데.. 폭넓은 경험을 쌓으며 활동한지 4년이 넘어가는 중견 실무진들이 그 방에 모여있었습니다. 이 실무진들이 모두 다 대중씨와 같이 일할 수가 없다고? 현재 민족학교의 대중 운동을 대표하는 활동은 죄다 커뮤니티 조직 부서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맞서고, 이민자를 위한 의료보험 정책을 밀어붙이고, 운동의 규모, 구성원의 수와 판도를 키워나가고 적극 참여한 활동가들이 다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직 및 전직 실무진들이 활동하면서 받은 압력과 불평등, 그리고 그것이 개인 활동가에게 남긴 깊은 상처를 세세하게 털어놓은 편지의 초안에 언급된 문제점들의 심각성을 보고 나서 저는 이 사안에 안이하게 대응 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사진과 대중씨 본인은 실무진들이 대부분 실명으로 쓴 이 편지들을 받은 상태입니다. 이 점을 명확히 했으면 합니다. 실무진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대중씨를 포함한 이사진들에게 요구 사항을 전달했습니다. 1-2명만 제외하면, 익명으로 한 문제제기가 아닙니다. 다만 이사진에게 한 문제제기이기 때문에 실무진에게까지는 공개하지는 않았을 뿐입니다.

민족학교에는 80년대-90년대를 함께 경험하며 모든 문제들을 헤쳐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단식 투쟁, 평화대행진 등을 함께 해오며 깊은 유대감을 다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마당집에서 사무국장 등의 리더십 역할을 도맡아오고 이사진의 중책을 이끌고 있습니다.

백기석 씨는 이들 속에 속하지 못했지만, 같은 가치관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고, 저는 2018년에 그의 사무국장으로서 캠페인 총괄과 모금을 하는 역량이 남다른 것을 보고 사무국장이 되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이번 재정 사건과 이전의 여러가지 행정 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옆에서 보면서 느낀 점은 민족학교의 초기 세대가 신뢰하는 이들이 정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사무국장이 필요하기는 하니까 백기석씨를 사무국장으로 앉혀놓고 팔짱을 끼고 어깨너머 감시하는 느낌입니다. 신뢰는 하지 않으면서 일은 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청련 회원들은 이제 모두 마흔을 넘겼습니다. 앞으로 몇년 동안 이렇게 활동을 맡겨보았다가 아닌 것 같아서 다른 사람으로 다시 시도해보는 것을 계속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번 위기가 민족학교로서는 운동으로써 재생산이 가능 할 수 있는 몇 안 남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문제는 전임 사무국장으로서의 역할입니다. 오랫동안 한 사람이 사무국장직을 맡아온 단체들의 이사진은 새로운 사람을 찾는것을 어려워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찾을 필요는 있는데 현임이 일을 잘 하고 있어서 주저되기도 하고, 오랜 기간 노련하게 운영해온 현임처럼 업무를 잘 처리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전임 사무국장의 입장에서도 신임 사무국장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볼 때 일부는 더 잘 처리하기 위해, 일부는 관성적으로 일을 처리해온 방식을 강요하고 싶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자주 불거집니다. 다시 말해 대중씨는 신임 사무국장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좋은 의도를 가지고 개입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히려 조직의 운영에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면 전임이 계속 남아 일을 도와주는 것이 더 나아보이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은 전임 사무국장이 단체를 떠나 다른 차원에서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민족학교와 오랜 기간 함께 해온 Community Coalition이라는 민권단체는 설립자 캐런 배스씨가 정계에 출마해 연방하원의원으로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진보 의원으로 활약하고 있고, 2대 사무국장인 마르키스 하리스-도슨씨도 정계에 출마해 LA 시 의원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대중씨의 워싱턴 DC 나카섹 사무국장 경험상 정계 진출을 매우 싫어하실 것 같긴 한데, 중요한 것은 오랜 기간 활동한 사무국장은 이렇게 조직을 떠나 다른 차원에서 운동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조직의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와, 후술 할 운동의 경영 상의 문제, 그리고 앞으로 민족학교에서 활동을 이어나갈 활동가 기반의 중추를 지키기 위해 대중씨가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촉박해서 글을 잘 다듬을 수가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의로 혹사하는 실무진

민족학교에서 이민개혁 캠페인 및 청년 조직을 맡아서 활동했던 활동가가 돌연 사표를 낸 후 공개적으로 2013년에 윤대중 사무국장 및 윤희주 사무국장을 비롯한 민족학교를 비판하는 공개 성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이 성명은 민족학교의 실무진과 이사를 비롯하여 수백명의 사회운동 활동가, 민족학교 회원, 후원 재단, 언론사에게 전달되었으며, 중앙일보에서 당시 관련 기사를 내고, 민족학교를 적극 후원했던 한 재단이 수년간 후원을 중단하는 등의 큰 여파를 끼쳤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성명의 일부 내용은 좀 억지로 맞춘 내용으로 보였지만, 일부는 정당한 비판으로 보였습니다.

이 활동가의 비판 중 하나는 민족학교의 운동권적인 노동 환경 – 굳이 제가 이름을 붙여보자면 “탄력적 시간제”였습니다. 탄력적 시간제의 내재적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사회 운동을 하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것이지, 직장을 다니는 월급쟁이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중을 위해, 이 운동이 필요로 하는 것을 최대한 역량을 발휘해 달성한다. 일이 필요할때는 모두 달려들어 함께 일하고, 각자가 알아서 쉬면서 건강을 관리한다. 우리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서 서로 돕는다.”

이 탄력적 시간제는 물론 윤한봉 선생이 활동하던 한청련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서면으로 남은 인터뷰 등을 읽어보면 당시 사명감으로 모인 무급 활동가 청년들은 낮에는 자신의 직장에서 돈을 벌고, 번 돈은 대부분 민족학교 운영비로 기부하고, 밤에는 민족학교로 와서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독재정권 하에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러한 위기 의식 속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많은 가정들이 극심한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압니다. 2006년 이사 회의에서 이사들이 이런 고민을 논의하던게 기억납니다: “이전 세대의 전사적 활동가의 유산을 어떻게 하면 민족학교에서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일부 이사나 활동가들은 민족학교 실무진들이 급여까지 받기 시작하면서 활동 시간이 직장인과 비슷해지자 뭔가 이상하다는, 이 길이 맞는 걸까? 같은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대중씨는 이러한 우려를 반영해 새로운 접근방법을 취했습니다. 일단 정상적인 직장의 구조는 어느 정도 유지하되, 운동의 목적에 대한 끊임없는 의미 부여를 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솔선수범해서 늦게까지 일하는 등의 모범을 보입니다. 계속 쉬라고 권유를 하면서, 달성해야 할 업무는 산같이 쌓습니다. 실무진은 고통받는 이민자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당사자들을 매일 보기도 하고) 계속 일을 더 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리고 쉴때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모두가 스스로 또는 사무국장이 설정한 엄청난 업무량에 짓눌려 있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해보았자 뾰족한 수도 없습니다. 제가 2007년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대중씨에게서 받은 답변은 “그래! 이럴 때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자. 용호 네가 자원봉사자 모임을 모집하고 조직해서, 어떻게 훈련을 해서 업무를 분산시킬지 계획을 짜보도록 하자”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런 것을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문제제기를 한 실무진들의 성명을 보시면 이러한 주제가 꾸준히 등장합니다. 2006년 3월 25일 행진 이후에도 이러한 문제제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왔습니다. 감기에 걸린채로 매일 밤에 농기를 만들었다는 청년 인턴, 고통받는 이민 현안에 대한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수개월간 감히 말을 못꺼냈다는 실무진들이 결국 참다 못해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민족학교를 떠났습니다.

이런식으로 수많은 활동가들이 2년도 못채우고 떠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새 활동가가 합류 할 때마다 업무에 대한 훈련을 제공해야 하고, 업무를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리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 좀 더 큰 역할을 할 때 즈음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업무 강도와 애매한 의사 처리 과정에 실망하고 떠나는 실무진을 수십명 보아왔습니다. 저는 아예 새로운 실무진이 와도 그 사람이 오래 버틸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런 burn out 을 피해서 2010년 경부터 제가 총괄하고 있던 시민참여 부서를 피해 대중씨의 관심이 덜한 데이터베이스 업무로 방향 전환을 시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이터베이스를 맡고 나서부터는 비현실적인 목표나 업무 수행 일정에 대한 압박은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그 활동가의 문제제기 후 저희는 점진적으로 이 모델을 개선했습니다. 처음에는 부장으로 이루어진 지도부, 이후에는 백기석 사무국장이 총괄한 모델의 기본 전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 40시간 업무량을 유지해야 한다. 사명감을 느끼거나 즐기는 일이라서 즐겁게 한다면 그건 그것 자체로 의미를 두어야지, 그것을 빌미로 더 일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40시간을 넘어서 추가 업무를 하는 것은 좀 더 큰 그림을 보며 활동할 여유가 되는 매니저급 이상으로 충분하다. (매니저급 실무진은 오버타임은 받지 않고, 탄력적 시간제를 제도화시킨 “comp time” 제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매니저급이 아닌 실무진이 추가로 일할 경우에는 노동법에 따라 오버타임을 지급하며, 추가로 일할 때마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이 이론대로 항상 잘 적용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건강한 운동의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가 활동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상이 있습니다. 커뮤니티, 가정, 건강, 정의, 평등, 자립,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가치관 – 양질의 일자리와 양질의 교육, 인간 친화적인 주거 환경, 환경 보호, 인권 보호, 이민자를 인간으로 대우하는 정책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조직 내부의 희생을 통해 사회에 이런 것들을 실현하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조직 내부에서부터 우리가 그리는 가치관들을 지켜나가고자 하기 때문에 활동 시간에 이러한 변화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2017년 DACA 폐지를 반대하는 백악관 6주 집회를 추진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탄력적 시간제를 일부 부활 했다고 봅니다. 이 집회를 앞두고 우리는 이번 역사적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중씨에게서 계속해서 들었고, 수십만 이민자 가정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의 세력 투사를 위해 밤낮으로 시위를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백악관 집회 동안 저는 이사의 배려로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집회는 워싱턴 포스트, CNN 등 많은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그 어디에도 우리가 24시간 집회를 한다는 사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변 단체나 활동가들도 이를 모를 것으로 봅니다. 오직 참여한 자신들과 가까운 일부 지지자들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왜 8시간을 나눠서 나머지 시간은 쉬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도록 할 수 없나요? 스스로를 혹사해서 더 큰 정치적 압력을 행사한 걸까요? 제 생각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쉬어가며 지속가능한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마라톤 주자 양성은 가능한가?

제가 예전에 영향을 받은 운동의 선배는 사회 운동에는 단기 선수만이 아닌, 운동의 마라톤 주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파했습니다. 3년-5년이 아니라, 10년 이상 활동하며 이들의 경험과 조직 역량을 토대로 더 강력한 운동을 만들어나갈 사람들을 다수 배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극우의 위협에 대응하고 우리가 그리는 형태의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16년 이후 민족학교에는 업무 시간의 개선과 일년 내내 활동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에 힘입어 꾸준히 매년 경험있는 활동가를 배출해내고, 중진 실무진이 보람을 느끼며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학교에는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의미깊은 성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두환 독재정권을 타도하는데 앞장 선 단체가 30년 후에도 계속 그 기치를 들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민족학교는 앞으로도 수많은 한인 이민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계속 참여를 불러모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이 오고, burn out 하고, 자신의 의견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2-3년 간격으로 떠나는 것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대중씨는 말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잘 안 되었지만,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다시 열심히 해봐야지”.

민족학교의 이사진은 문제제기를 한 실무진들의 편지를 보셨습니다. 그 중 일부가 저의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에 저는 이들의 이야기를 믿습니다. 이사진은 실무진들의 이야기를 믿습니까?

강력한 운동에는 마라톤 주자들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민족학교에는 마라톤 주자로서의 잠재력이 보이는 이들과 이런 활동가들을 계속 양성해낼 수 있는 물적, 구조적 기반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학교의 여러분도 운동에 대한 이러한 비전을 공유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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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hokim